5: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5: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5: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5: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5: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5: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마가복음 5:1~8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 예수님은 갈릴리를 건너 거라사인들의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이곳은 데가볼리로 불리우는 이방인들이 사는 열개의 큰 지역이었습니다. 온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이든에게도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은혜 베푸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거라사인들의 지역에 도착하자 예수님을 처음 맞은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귀신에 의해서 자기의 의지를 빼앗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처소를 떠나 무덤 사이에 거처를 정하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그는 사람들에게 쇠사슬로 매임을 당해야 할만큼 사람들의 위협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타인을 해치기도 했지만 그 스스로 자기를 해하며 고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선한 일을 할 의지를 잃고 사람들 안에서 상처받고 스스로를 해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 절하며 그 권능과 위엄을 높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만 긍휼을 구하기보다 자기를 그대로 놓아두기를 요구하는 귀신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 지금 그대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귀신을 내어 쫓으심으로 그 사람을 살리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렇게 전적으로 예수님의 찾아오심과 능력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를 받고 이 사람처럼 예수님을 따르려 하기보다 능력을 보고도 예수님께 떠나기를 간청하는 지역 사람들과 같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더 큰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보다 내게 부담스러운 상황이나 내 재산의 손해를 걱정하느라 은혜를 떠나가는 어리석음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를 찾아 오시고 은혜 베푸셔서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십니다. 그 은혜를 더욱 사모하며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자리를 소망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나의 소망과 기쁨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