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싱크"

2011.08.13 22:01

양제환 조회 수:2605

립싱크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살아간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은혜를 소망함이 높은 자리에 앉게 되기를 바라게 되었고 큰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큰 명예를 어께에 매고 다닐 수 있게 되기를 기도 하는 것이 목적이 되고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버지가 물려준 콩밭과 배추 밭이 금싸라기 땅으로 변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 하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 같은 이야기를 요즈음에도 가끔씩 듣는 이가 있다고 한다.

 

벌써 4주째 새 신자 교육을 하고 있다. “새 신자란 개념은 초신자란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써 알아야 할 것을 바르게 알아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받아왔던 여느 훈련과는 많이 다른. 주입식 이라기보다는 같은 주제를 놓고 서로 질문도 하고 토론을 하는 훈련의 방법이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해왔던 훈련과는 달리 흥미 만점이다.

 

듣는(경청)입장에서의 통상적인 훈련이라기보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가며 참가자들의 의견도 나누어 가며 진행하는 시간이 계속 될수록 진지하여지고 나름대로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에 더러는 무지한 나의 모습이 드러날 때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러나 나는 언제나 배우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렇게 부담은 없어 꾀나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또한 이 훈련을 통하여 배우고 느낀 모든 것을 다른 이들과도 나누게 되기를 기대하여 본다.

 

말씀을 묵상 하던 중 갑자기 몇 년 전 중국에서 개최되었던 올림픽이 생각났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열렸던 올림픽 개회식 때에 아주 귀여운 어린 여자아이가 나아와 전 세계인을 관중 삼아 당차게 노래하던 모습을 기억 하실 것이다. 그러나 불과 얼마 후 그 모습은 실제가 아닌 립싱크 였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하였고 또한 역시 중국은 스케일도 다르다. 라는 조소가 온 세상에 넘실되었던 때가 있었다.

 

나는 요즘 새 신자 훈련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주어지곤 한다. 그 때마다 나는 말씀 안에서 진실 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에게 하여본다.

주님께서 지키라 하신 율법과는 아주 많이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도 최소한 다른 이들 보다는 더 거룩하고 고상한척 하였던. 그럴싸하게 살아온 나의 모습이 들킬 것 만 같다. (물론 이다음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모두가 드러나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숨기고 싶고 믿음이라는 포장으로 가리고 싶었고 나에게 주어진 직분으로 체면치레를 하고 싶었던 적이 너무나 많았는데 그런 것 들이 립싱크와 너무나 닮은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짐을 느낀다.

 

성경에 대하여 별로 알지도 못하면서 성경 몇 구절 알고 있는 것을 주저리주저리 읊어가며 알아주지도 않는데 목에 힘도 주었었고.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의 자리에 몇 번 나오는 것으로 나의 신앙이 깊어 보이는 것 같았고. 나에게 주어진 직분으로 인하여 더 고귀하게 보여 지기를 은연중에 바랐으며 남들 눈에 띄는 봉사의 자리에 나도 있었음을 은근이 알아주기를 바랐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솔직한 대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디 이것만이 립싱크라 하겠는가. 맡기어진 직분 때문에 거룩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고 예배 때마다 참석하려 노력을 하였다면 어쩌면 그러한 모습도 성화의 한 과정이 아니었겠냐고 항변을 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러나 겉으로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이것이야 말로 립싱크와 라이브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고 배웠으며 실천하기를 간절히 원하였던 것이 사랑과 섬김이었을 터인데 사랑을 나누어 줄 때에는 진실이 없었고 섬김에는 희생이 없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모양만 있고 행함이 없었던 립싱크 같은 삶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나의 모습이야말로 짝퉁 그리스도인 이라 하여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나는 이번 새신자 훈련으로 인하여 나의 신앙생활의 인프라가 바뀌어 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방법도 사랑의 섬김의 자세도 변화되기를 기대하여 보는 것이다.

새 신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더 알아 간다는 것과 올바로 안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과 같이 한없이 들 떠있는 것 같은 마음을 갖게 한다.

 

순간순간마다 나와 함께 하셨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나는 1%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1%도 깨닫지 못하였기에 앞으로 내가 더 알고 감사하여야 할 부분이 99%나 된다는 것은 너무나 큰 기쁨이기에 생각만 하여도 가슴 벅찬 기대감이 넘친다.

 

새신자 훈련이 계속 될수록 더 많은 깨달음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간혹 토론 하는 가운데 나의 연약한 부분이 드러나 남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나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고 더 변화되어 진실 된 그리스도인으로 의 삶을 살아가게 될 터이니 말이다.

 

스위스의 사상가 칼 히티 라는 사람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 있다면 나의 사명을 자각하는 날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목적을 위하여 쓰시겠다고 작정하신 그것을 깨닫는 일말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위대한 사상가도 고민 하였던 하나님의 뜻을 어찌 내가 감히 하나님의 크신 뜻을 알려고 하겠느냐 마는

 

사람의 나이 50이면 지천명이라 하였는데 이제 몇 달 후면 60인데도 하늘 아버지의 뜻은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여 마음은 급한데도. 시력이 낮아지고 청력이 약해져도 왼 가십 거리들은 그리도 잘 보이고 또 잘 들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들리고 보일 때마다 투덜거릴 필요도 없고. 또 속을 부글부글 끓이지 않고도 별일 아닌 것처럼 넘어 갈수 있는 조그만 지혜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가십거리의 소리가 크게 들리고 눈에 이것저것 모두 들어 올 때에는 나의 삶의 범위와 신앙의 높이가 너무 좁고 낮았기에 나의 마음의 문이 닫혀져 있었을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나의 마음의 문을 최대한 크게 열고 두 팔을 활짝 펼치고 보려고 한다. 그리하면 세상의 이야기 거리들은 아주 작고 별것 아니게 보일 터이니 말이다.

보고 또 보아도 끝없는 상상의 날개를 달고 천국 삶을 넘나들기도 하며 말씀을 묵상 할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고 또 느껴지는 진리의 말씀이 66권이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나에게 삶의 지식도 갖게 하지만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아주 조금씩 알아가는 갈급함의 채워짐이 있기에 그렇게 느껴짐이 나의 작은 가슴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