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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갤럽에서 미국인들을 상대로 다양한 도덕적 상황에 대해 수용 가능성을 질문하고 그 변화를 추적해 왔습니다. 최근의 경향은 뚜렷하게 성경의 기준과 멀어져 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성적인 도덕성의 경우는 확연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혼전 성관계, 동성애, 혼외 출산, 성전환등은 이미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수용 가능하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도박이나 안락사, 낙태에 대해서도 도덕적으로 수용 가능하다는 의견이 절반이 넘을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혼전 성관계나 동성애, 도박은 70%가 넘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수용 가능하다고 대답했다는것입니다. 이들 중에서 65%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대답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범주로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적인 기준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시대마다 자기 시대가 추구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시도들을 해 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꽤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서 현대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여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그 자체로 변함 없는 권위를 가지고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특별히 도덕적인 규범을 가르치는 것이 성경의 목적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백성이라면 그 삶의 기준이 성경의 가르침이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준은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도덕적 수용을 조금씩 성경의 시각으로 바꾸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바꾸려는 시도를 하기 전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생각과 관점의 변화를 일으키고 인도하신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 안에서 세상의 도덕적 관점은 한없이 급하게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곳 캐나다로 이주해와 사는 삶에서 느끼는 문화적 차이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되는 문화적 차이가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이제는 현시대적 관점을 따라가기에 벅찬 나이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 선언은 지금도 제 가슴에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만 이 변화하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특별히 다음 세대들에게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대속, 구원에 대해서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기준에 대해서는 성경이 하시는 말씀이니 그대로 믿고 따르라고만 말하기에는 그들이 사는 세상의 도덕적 기준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양보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성경은 그 시대에만 적용되는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예제도나 일부다처제 같은 문제가 용인되는 성경의 이야기를 보면서 지금도 그런 도덕적 기준이 유용하느냐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명령하신 말씀에는 기준과 뜻이 있습니다. 그 때에 용인된 것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이 아닐 뿐더러 성경에서 그들에게 벌하지 않는 하나님을 본다고 해서 그들이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도덕적 기준을 발견해 갈 수 있습니다.

 

그냥 내가 가진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기 전에 이런 문제들에 대한 성경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 우리의 자녀들에게 바른 기준을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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