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3 11:41

콘트라베이스

조회 수 9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bass-1423288_960_720.jpg

 


영화 <향수>의 원작인 소설과 <좀머씨 이야기>를 쓴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가 쓴 소설중에 <콘트라베이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희곡처럼 한 무대위에 선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독백으로 되어있는 소설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주인공은 자기의 처지를 이 거대한 악기에 비유해서 이야기합니다.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인 국립오케스트라의 관악부 세번째줄에 위치한 베이스연주자가 바로 자기의 정체성이라고 말합니다.

 

안정된 직장(공무원)이고 자신의 악기를 다루는 실력은 인정받고 있는 연주자였지만 그는 스스로를 기술자라고 부릅니다. 결코 솔로로 연주할 기회가 없고 심지어 함께 연주하는 자리에서 자기가 연주를 멈추어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자기의 처지를 벗어 날 것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이 글을 읽는 내내 한 사람의 독백과 처지에 마음이 갔습니다. 그가 서있는 자리가 아마도 이 시대에 살아가는 많은 아버지들이 서있는 자리 같기도 했습니다. 어디 아버지들 만일까요. 이곳에 살아가는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느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해보입니다.

 

나는 현재의 삶에 열심을 내지만 누구도 나의 삶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이고 내가 사는 삶이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누구라도 그렇게는 할 것 같고 다른 더 중요하고 필요한 일에 쓰임 받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물론 그 일을 시도할만큼 용감하지도 않기에 그 일은 늘 멀리 바라보며 생각하는 꿈같은 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가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관현악에서는 주로 제일 바이올린 연주자나 그 곡에서 솔로파트를 맡은 사람들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의 연주가 필요없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연주가 합하여야만 웅장한 관현악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콘드라베이스도 그렇습니다. 그 소리를 귀담아 듣는 이가 없는 것 같아도 그 소리가 빠지고는 결코 관현악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함께하는 삶에는 두두러지는 존재들에 의해서 공동체가 움직여지는 것 같지만 오히려 묵묵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에 의해서 공동체가 살아가고 힘을 내게 되는 것을 봅니다.

 

교회가 그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는 한사람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수없이 많은 평범한 성도 한사람들이 모여 그 자리를 지키고 기도하고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 서고 시간을 내어 봉사의 자리에 서며 마음과 힘을 써서 섬기는 자리에 서는 이들로 인해서 교회는 자리를 지키고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이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교회로 지어져 가는 것이고 그들을 쓰셔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 땅 가운데 이루실 것입니다.

 

가끔은 내게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사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믿음의 실천들을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본이 세워지지 못하고 그 위해 능력이 주어지면 오히려 나에게 해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자리에서 기본에 충실한 성도들과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1. 기억상실증에 걸린 신데렐라

    10여년도 전에 칼럼으로 쓴적이 있는 내용입니다. 마이클 그리피스라는 신학자가 쓴 책중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교회”라는 것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이 책의 영문 원제목은 “Cinderella with amnesia”입니다. 신데렐라를 아시나요? ...
    Date2023.12.26
    Read More
  2. 내가 걸어온 시간들

    철학자 김진영은 그의 책 [­아침의 피아노]에서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 본다. 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 나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
    Date2023.12.19
    Read More
  3.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What makes the desert beautiful is that somewhere it hides a well.” - 생텍쥐페리(소설 어린왕자 중에서) 어른을 위한 동화와 같은 어린왕자에는 꽤 생각할 만한 ...
    Date2023.12.13
    Read More
  4. 수고하며 애써야 하는 선함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히틀러 밑에서 유대인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전범을 재판하는 과정을 취재하고 분석한 글입니다. 한나 아...
    Date2023.11.28
    Read More
  5. 외로운 싸움이 아닙니다

    세계선교 기도편지에 따르면 올 10월 기준으로 전쟁으로 인한 난민의 숫자가 1억명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익히 알려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뿐 아니라 이제는 관심에서 멀어진듯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
    Date2023.11.21
    Read More
  6. 우리 삶에 생기는 틈

    우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루 하루 바쁘고 애쓰며 살아가다가 보면 참 틈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내가 어디에 껴있는지 조차 가늠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을 향해 수고하며 하루의 길을 걸어 ...
    Date2023.11.05
    Read More
  7. 슬픔과 고통이라는 안전장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형상대로 참 놀라운 존재로 태어 났습니다. 우리의 육체의 능력이나 기능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떤 것들과 비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인간은 ...
    Date2023.10.31
    Read More
  8. 완전한 세상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요즘과 같이 혼란한 세계 정세를 바라보면서 불완전한 인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각자 자기의 생각과 기준을 따라 살아가면서 충돌하는 이해관계가 만들어내는 불협화음들을 봅니다. 이렇게 혼란한 ...
    Date2023.10.24
    Read More
  9. 끝까지 욥과 함께 침묵하기

    구약 욥기는 읽는 이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도록 합니다. 그의 이유없는 고난에 나의 상황을 투영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그 상황을 이해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질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우리는 욥의 친구들과 같이 변해버리는 자신을 보게 됩...
    Date2023.10.19
    Read More
  10. 마음이 가는 곳 

    사람은 눈으로 보고 발로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어딘가 목적지를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면 보통은 마음이 가는 곳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가슴을 따라 왔다는 “순종”이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는 가슴이 움직이는대로, 다른 표현으로는 마음이 ...
    Date2023.09.0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8 Next
/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