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지 못함을 위한 변명

by lfkpc posted Mar 1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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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기간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부활주일을 기준으로 주일을 제하고 40일 전부터 시작하는 사순절 기간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을 깊이 묵상하고 우리의 구원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발걸음을 묵상하면서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누리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이 기간이되면 복음서들을 묵상하다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됩니다. 물론 현재의 삶에서 뿐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의 시간이 이 땅에서 지나가던 그 때 그 시간속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하던 이들이 없음을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 많던 사람들도 떠나가고 사랑하시던 제자들도 각기 제길로 가버린 시간 베드로도 요한도 야고보도 없는 고난의 자리며 먼곳 아프리카의 구레네에서 온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하고 홀로 걸어가신 그 길을 볼 때 고난의 자리에 아무도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힘겨움을 생각하게됩니다.

 

그 외로움과 아픔의 시간이며 자리였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로부터 막달라 마리아, 혹은 알려지지 않은 여러 여인들은 예수님이 고난당하시던 자리, 십자가를 지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던 그 십자가 아래까지 그리고 부활하시는 무덤까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볼 때에야 많은 이들이 그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자리-그것이 비록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는 대속의 자리라 할지라도-에 서실 때에는 그 많던 무리들은 다 사라지고 아무도 없이 홀로 그 길을 걸으셔야 했습니다. 그래도 적은 사람들이었지만 여인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함께 울어주고 있었다는 것은 한편의 위로와 은혜가 되는 기록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신실하기를 원합니다.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고 싶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쉽게 흔들리고 넘어지는 것을 봅니다. 믿음을 지켜야 할 자리에서 숨어버리는가하면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할 순간에 얼굴을 내밀고는 슬며시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어디 믿음으로 사는 삶 뿐일까요.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서 신실하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충분히 신실하게 살아갈 사람들이 아니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과 위로로 서로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한 사람이 끝까지 옆에 있어주고 힘이되어 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라도 한 사람이 떠나간 자리를 또 다른 사람이 채워주고 그 뒤를 또 다른 사랑이 메꾸어 주면서 서로의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교회로 세우신 공동체에서 한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모든 공동체가 함게 위로하고 곁에 있어주면 좋겠지만 혹시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위로를 전하고 빈 자리를 또 다른이들이 채우면서 그렇게 서로 함게 교회가 되어가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끝까지 있어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할 수 있지만 그 자리를 또 다른 이들의 수고와 헌신을 채우면서 그렇게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가고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런던제일교회의 지난 43년의 시간이 아마도 그렇게 지나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교회를 이루는 우리들이 항상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서로의 연약한 부분을 조금식 채우고 돌아가면서 필요한 부분을 섬기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고난의 자리에 울며 함게 서 있었던 여인들과 같이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 여러분들로 교회는 힘을 얻고 세워져 갑니다. 함께 교회로 서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