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넷째 주 목장모임 교재

2014.02.13 10:52

lfkpc 조회 수:289

2월 넷째 주 목장모임


먹이시는 예수님/마태복음 14:13-21


14: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4: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4: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4: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14: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예수께서 배를 타고 떠나셔서 빈 들에 가시자 무리가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무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배고파서 주린 백성들을 배불리 먹여주신 예수님은 진정한 왕이십니다.


말씀과 나눔


1. 당시에 많은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르침에 권위가 있으시고 수많은 회복(치유와 귀신을 내쫓는) 사역을 하신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여겨졌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무리가 그분을 쫓아다녔습니다.


1) 예수님은 왜 계속해서 병자들을 고쳐주십니까(14절)? 그런 회복의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예수님의 회복사역과 생명사역은 긍휼을 근거로 합니다. 병자들은 병에 묶인 자들입니다. 병으로부터 자유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묶인 것을 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묶인 것들을 풀어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공생애 처음으로 낭독하신 말씀은 이사야에 나온 희년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눅 4:17-19).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50년마다 돌아오는 해가 희년입니다(레 25:10). 희년이 되면 빚으로 묶여 있던 자신의 기업이 풀리게 되어 그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고(레 25:28), 종으로 묶여있던 자도 풀리게 되어 자유인이 되며(레 25:39, 40), 팔았던 밭(땅)도 풀리게 되어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레 27:24). 바로 희년은 묶인 것을 풀어 자유케 하는 축복의 해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바로 이러한 ‘희년’ 사역이었습니다. 사탄과 어둠에 묶여있던 이들을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모두 푸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이 전해지면 묶였던 것들이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묶여 여전히 신음하고 있는 영혼들을 복음으로 풀어주는 것이 교회와 성도들의 사역(mission)입니다. 폭력으로 묶인 것들, 돈으로 묶인 것들, 세상의 이론과 철학으로 묶인 것들, 우상과 권세자들에 의해서 묶인 것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풀어 자유케 해야 합니다.


● 나눔 1
예수님은 묶인 것들을 풀어 자유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여전히 우리를 묶고있는 것들 때문에 자유하지 못한 것들이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2. 저녁까지 회복 사역을 하시는 예수님께 제자들은 저녁 식사 때가 되었으니 사람들을 돌려보내야한다고 제안합니다(15절). 그러나 예수님은 오천 명이 훨씬 넘는(21절) 사람들을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배불리 먹여주십니다.


1) 제자들의 제안(15절)은 지극히 상식적입니다. 참된 신앙은 상식을 무시하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상식을 초월합니다. 우리에게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 중,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초월해야 할 것들은 없습니까?


2) 제자들의 제안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가(제자들) 먹을 것을 주라”(16절)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십니다(19절). 우리가 책임져야 할 하나님 나라의 일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줄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치유와 가르침 사역을 경험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 중 남자 성인만 오천 명(21절)이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1만 명은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 저녁이 되어 해 질 무렵이 되자 제자들은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지극히 상식적인 제안을 합니다. 무리를 마을로 보내어 사먹게 하는 것(15절)이 그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무리로 하여금 스스로 사먹게 하자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런 제안을 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무엇이 상식적인 처사입니까? 그러나 사탄은 종종 우리를 상식이라는 굴레에 묶이게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들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이는 주로 인과율의 법칙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상식을 초월하셔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보다 과학의 법칙이나 세상살이에 있어 상식이라는 우물 안에 갇혀서 복음의 능력을 의심하며 살고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3)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무엇을 하십니까(19절)?


왕이신 예수님이 허기진 백성들을 먹이십니다. 왕이신 그분은 분봉왕 헤롯처럼(14:1)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유린하거나 불의로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 아니십니다. 가난하고 병든 백성들을 긍휼이 여기시고 그들의 아픈 곳을 감싸고 치유해주시며, 배고픔을 채워주시는 참된 왕이십니다. 사랑과 진리로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고, 나누어 주시는 동사는 마지막 만찬에서 행하신 것과 동일합니다(26:26). 즉 오늘 본문은 26장의 마지막 만찬을 위한 예고편과 같습니다.


여기서 ‘축사하다’의 뜻인 ‘유로게오’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먹기 전에 하는 유대인들의 공통된 기도의 내용은 ‘땅으로부터 양식을 얻게 하시는 우주만물의 왕이신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감사하나이다’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되신 모든 근원적 힘과 내용들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감사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성도의 삶은 보상을 바라는 것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도 아닌,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형제와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 나눔 2

사탄은 종종 우리를 상식이라는 굴레에 빠져들게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들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상식을 초월하셔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보다 과학의 법칙이나 상식이라 때문에 말씀을 바로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나눔 3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권능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감사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모델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또 감사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나눠봅시다.


함께 기도
하나님, 예수님을 우리의 왕 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을 통해 왕 되신 예수님만을 예배하오니, 그런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아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