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2: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2: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2:14~17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동안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특별히 갈릴리지방은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시는 주무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가시다가 길에서 한 세리를 부르고 있는 장면을 기록해줍니다. 마태복음 9장의 같은 본문에 따르면 부르신 제자는 마태였던것 같고 그가 제자들 중에서는 가장 마지막으로 불리움을 받았다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부르신 세리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셨고 그곳에서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어울려 식사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에 비교적 경건한 삶을 살려고 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도전이 되었습니다. 아직 예수님의 말씀을 놀랍게 들었고 따르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교제하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입니다. 율법을 따라 그들은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이미 죄가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뒤이어 나오는 금식논쟁을 따라도 예수님은 경건한 삶의 모습인 금식도 행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이들과 식사하고 교제하는 것을 즐겨하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입니다. 당시에 잘 알려진 격언으로 건강한 자에게야 의원이 필요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의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통해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오셨음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의인이니 내가 필요없다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대속의 십자가가 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불공평해 보이기도 하는 장면입니다. 그래도 비교적 율법을 지키려고 애썼던 이들은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세리와 같이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살던 이들은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착각과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셨고 나름대로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쓴 청년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보시기도 하셨습니다. 다만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선함과 의로움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육신으로 행하는 제례 의식이나, 금식, 다른 이들 앞에 보여지는 기도나 지식이 나의 믿음을 드러낸다고 착각하는 교만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그 은혜를 사모하기 보다 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고 내가 이 땅에서 누릴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아는 죄인과 내가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죄인만 이 땅에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나의 약함을 온전히 내려 놓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