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시는 예수님(마가복음 14:43~52)

2021.09.27 21:22

lfkpc 조회 수:38

14: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14: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14: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14: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14: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14: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14: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14: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14: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마가복음 14:43~52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가 끝나자 무리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몰려 왔습니다. 제자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그들을 데리고 나타난 것입니다. 마가는 그들이 대제사장, 서기관과 장로들의 하속들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검과 몽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합니다. 자기들의 숫자와 힘을 믿고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일에 앞장서서 예수님께 입맞춤을 함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어두운 밤 무리들이 쉽게 예수님을 알아보고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께 입맞춤으로 존경을 표시하면서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늘 선생님을 향한 존경의 표시인 입맞춤이 지금은 예수님을 배신하는 상징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는 배신을 위해 얼마든지 양심을 팔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곁에 섰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잡는 무리들에게서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베어버립니다. 나름 예수님을 보호하고 싸우려는 모습이지만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대속은 아직 깨달아 지지 않았고 예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잡히시지 않으신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이것이 보통 우리들의 반응이자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때에 어떠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마땅할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언제라도 쉽게 예수님을 잡을 수 있었음에도 그리하지 않다가 이 밤중에 은밀하게 예수님을 잡으려는 무리들의 속내를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악한 죄의 속성입니다. 정당하지 않고 교묘하게 죄를 지으며 그것을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문제는 예수님의 자발적 허락 없이 불가능합니다. 이미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고 다른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은 잡으러 온 무리들을 넘어뜨리시는 권위를 보이십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의 숫자와 교묘한 계략이면 예수님을 잡고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이와 같이 인간의 죄악된 생각과 어리석음을 사용하셔서 대속의 죽으심을 완성하십니다. 그들은 돌이키고 회개할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고 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루고 있지만 이 역시 그들의 연약함을 드러내 주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십자가는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홀로 지시는 것이자 홀로 걸으시는 길입니다. 가장 가까운 제자들 조차 그 길에 동참하지도 옆에서 함께 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계획하시고 이루심으로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됨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구원에 서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대신하셔서 인간들의 어리석은 행위를 홀로 담당하시는 예수님의 대속을 다시 묵상하는 하루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