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마가복음 15:37~47)

2021.10.04 08:43

lfkpc 조회 수:33

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15: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15: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15: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15: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15: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15: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15: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15: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마가복음 15:37~47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셨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마가의 이 기록은 다른 복음서에서 '다 이루었다'는 선언이나 '네 영혼을 아버지 손의 부탁하나이다'는 기도로 구체적인 설명을 보게됩니다. 당신의 생명을 버리시는 메시야는 고통으로 단말마의 외침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간구와 교통, 그리고 메시야로 대속의 사역을 이루시고 죄를 속하신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을 통해 그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죄인인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았던 휘장은 이제 우리의 죄를 속하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더 이상 그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죄인들은 이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십자가에서 속해 졌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덧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 섰던 이방인인 백부장의 고백은 마가복음을 잘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이라는 선언으로 시작한 마가복음은 이 백부장의 고백으로 다시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인 백부장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으심을 보고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만의 메시야가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향한 고백을 우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시는 십자가에는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는 누구도 있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요한과 몇명의 여인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많이 사랑하고 섬겼던 여인들의 헌신과 고백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용감하고 담대한 헌신도 때로는 이렇게 사랑으로 곁을 지키는 섬김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하는 바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특성을 그대로 쓰셔서 부르신 부르심에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예수님은 그날에 숨을 거두셨고 날이 저물기 전에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기를 원하는 한 사람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예수님의 장례가 이루어집니다. 근느 경건한 공회원이었고 조용히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으심 이후에 그는 담대하게 자기의 고백을 드러내며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사람이었고 최선을 다해 예수님을 자기의 무덤에 모시고 있습니다. 특이한 사실은 요셉이 빌라도에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그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 할 때에 쓴 헬라어 단어인 '소마(몸)'라는 단어는 시체를 의미하는 '프토마(시체)'와는 다른 의미로 인간의 육체를 칭하는 단어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신신을 달라 하면서 그 몸으로 부르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향한 존경과 부활을 염두에 둔 고백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45절에 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예수님의 시체(프토마)를 내어 준 빌라도의 말과 대비되면서 그 의미를 우리에게 선명하게 들려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으심으로 볼 뿐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소망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 믿음이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소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담대함을 준다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생명으로 담대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달려 가는 성도 들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