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에 실을 시를 시를 찾다가 ‘17세기의 어느 수녀의 기도’라는 시를 만났습니다. 작자도 알려지지 않고 실제로 17세기 어는 수녀의 기도문을 옮겨 놓은 것인지 알수 없는 시를 만났습니다. 한국의 여러 시인들이 이 시를 번역하고 옮겨 책에 실은 것을 보면 아마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17세기를 살았던 수녀의 기도인 것이 맞는 모양입니다.
조금씩 번역은 다르지만 그 내용은 지금 우리가 읽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내용들입니다. 그 시를 조금만 옮겨 본다면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중간 중간 옮겨서 전체를 다 볼수는 없지만 수녀는 자신의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더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로 바꾸고 있습니다. 육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만 그것으로 오히려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작은 일에지만 타인의 선한 모습을 보고 격려하고 칭찬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서 참 아름답고도 좋다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공감되는 글일 수록 그렇게 살고 실천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누군가의 글이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동을 받습니다. 특별히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사는 저에게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받는 은혜와 감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나의 현실에 들어서면 정말 실천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게되는 것을 봅니다.
어떤 것들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정하거나 느끼지 못하기도합니다. 각자의 기호나 생활환경, 혹은 자라온 배경에 따라서 더 좋게 느끼기도하고 더 많이 분노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을 울리는 감동은 아주 일부를 제하고는 거의 동일한 부분에서 감동하고 그 말을 인정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 내면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고유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어서 비슷한 부분에 감동하고 마음에 울림을 얻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감동이 되는 것들을 보고 특별히 그런 글이나 말을 접하게 되면 메모하고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의 삶을 실천하려고 하는데는 꽤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유는 모두가 감동할 만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일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는 하셨으나 실천하고 헌신하기에는 어려운 덕목이기 때문일것입니다.
2019년을 시작하면서 한가지 소망과 도전이 있다면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선한 영역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써야 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요구하시고 세상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삶의 덕목들이 내 속에 하나씩 자리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애써 수고하며 기도하려고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며 가지기 어려운 성품이니 하나님이 주셔야 할것이라고 기도의 자리에서 떼를 써보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