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입니다. 신영복선생이 자신의 인생에 가르침으로 삼았다고 해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말이기도 합니다.
노자에서는 물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이롭게 하지만 결코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 그곳을 채운 후에야 다음으로 흘러 간다고 풀어 쓰고 있습니다.
물이 흐르는 이치는 더 낮은 곳을 향해 가는 것이고 그 흐르는 물을 모두 받아 들이는 곳이 바로 바다라는 곳입니다. 그래서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 들여 그 품에 품는 것 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물과 같이 다툴만한 벽이 생기면 돌아 흐르고 스스로를 높이기 보다는 낮은 자리에 관심을 갖기를 이야기합니다. 연약한 이들의 필요를 채우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다가 보면 선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담아 이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물이 가진 마음을 우리 인간이 갖기란 참 어려워보입니다. 그런 가르침을 평생 붙잡고 살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낮아지고 많은 이들을 품어 안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차라리 가끔은 내 솔직한 약함을 드러내고 때로는 다툴지라도 함께 다듬어져 가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한 쪽에서 모든것을 품고 참아내고 그것을 선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약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부부간에도 부모 자식간에도 그렇게 물과 같이 모든 것을 참아내고 품어주며 낮은 자리에 서서 상대의 부족한 것을 채워 줄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아마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면 그러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채우시고 우리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개의치 않으시고 품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물은 하나님과 같이 그 본질 자체가 변하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는 물에 다른 불순물이 섞이면 물이 달게 되기도 하고 혼탁해 지기도 하지만 결국 물은 그 자체로 다시 순수하게 정화되어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수증기가 되어 증발하는 물을 증류수라고 부릅니다. 이 증류수에는 다른 어떤 이물질이 없어서 물 그 자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순수한 우리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여러 불순물이 섞이고 그런 생각들과 욕망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인간의 아름다움을 덮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대로 본래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우리를 씻으셔서 새롭게 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죄로 더러워진 우리를 정하게 하시고 깨끗하게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육신을 입고 죄인으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아름답고 선하신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우리를 변화 시키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오늘 나를 돌아보며 나를 새롭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아직은 아닐지라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아 가도록 부르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순전한 물과 같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