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인사를 건낼 때 자주 “평안”을 묻습니다. 특별히 말이 아닌 문자로 인사할 때면 항상 평안을 전하고 묻곤합니다. 따로 할 인사말이 생각나지 않기도 하거니와 평안이란 단어를 좋아해서이기도 합니다.
요즘 이 평안이란 말이 더욱 간절합니다. 세상이 시끄럽고 복잡한 일들로 가득해서 조금은 조용한 그래서 한 편 평화로운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일상에서도 자주 이런 저런 고민과 문제들로 침해받기 일쑤입니다.
가만 앉아서 마음을 위로하는 시를 읽거나 음악을 들어야만 마음이 평안을 얻을 것 같은 생각이듭니다. 물론 그런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말입니다. 사실 평안은 애초부터 우리에게 먼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인간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이 평안은 늘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류는 이 평화를 얻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이런 저런 제도들을 통해서 또는 기술의 발전과 교육을 통해서 유토피아를 꿈꾸어 왔지만 결국 도달하는 것은 아직도 손에 잡히지 않는 꿈같은 세상을 향한 갈망입니다.
12월 10일자 신문에 어떤 시인은 함민복시인의 시인 <어머니2>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그 시의 한 연을 걸어두고 백 년은, 천 년을 살 수 있겠다고 말합니다. 다름아닌 “우주에 헌법이 있다면 사랑”이라는 말이고 “법은 어머니 같아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세상이 소란할 때에 우리는 쉽게 법을 떠 올리고 판단하고 비난 하는 일에 열을 올립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우리는 어머니의 마음과 자세를 떠 올려봅니다. 그렇게 서로를 대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을텐데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사실 평안은 우리가 만들어 내거나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아닌것 같습니다. 성경은 평안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으로 소개합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안으로부터 멀어진 존재이기에 그 죄를 사해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만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처음 하신 말씀이 바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인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늘 하시는 인사말인 “샬롬”으로 인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은 거짓된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궁극적이고 완성된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평안은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니고는 우리와 같이 복잡다단한 삶을 살며 쉼없이 실패하고 범죄하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쉼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말씀들은 참 어렵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큼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없을만큼 어려운 요구들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우리에게 하신 분이 사랑이시고 그 사랑은 마치 어머니의 사랑과 같다고 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분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이시기에 우리의 약함도 아시고 우리의 욕심도 아셔서 때로는 기다리시고 참으시면서 우리를 평안으로 인도해 가실 수 있습니다. 내가 외로울 때 함께 눈물을 흘리는 자리에 서 주시고 내가 힘겨울 때 그 짐을 대신 져 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어느 순간에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 해가 지나갑니다. 가끔은 지친 모습으로 서지만 그래도 이제껏 함께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평화를 누리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