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름다운가?

by lfkpc posted Jan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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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4대 미녀들을 일컬어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침어(沈魚)”-“서시의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조차 잊은 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낙안(落雁)”-“왕소군의 미모에 기러기가 날개짓 하는 것조차 잊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
“폐월(閉月)”-“초선의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서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다.”
“수화(羞花)”-“양귀비의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물론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참 과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요즘에도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을겁니다. 나름대로 칭찬받고 사랑받는 이들일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무리 아름답다고해도 그 내면이 아름답지 않다면 겉으로 보이는 미모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겁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시간이 지나면 지고 마는 것이고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도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맙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더 품위있어지고 아름다움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그 마음이 인상으로 그 삶이 외면으로 드러나는 경우들 일겁니다. 겉모양은 그리 멋지지 못해도 사람들을 사랑하고 마음씀씀이가 아름다운 사람은 그 얼굴에서 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얼굴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마음이 아름답지 않은 이들은 그것들이 얼굴로 또 삶으로 드러나게 되어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람이 겉모양뿐 아니라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고들 말하는 모양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의 겉모양은 점점 나이들어가지만 우리 마음에 믿음과 신앙이 확고하다면 안에서 일어나는 소망이 우리의 삶과 표정을 더욱 힘있고 아름답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주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쓴 신영복교수가 별세했습니다. 성공회대학교 교수였지만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습니다. 그 스스로의 삶을 아름답게 살기위해 애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쓴 글씨가 아름다워서 그의 전시회를 찾아 다니곤 했었습니다. 그의 생각이 좋았고 그 편안함이 좋았습니다. 그를 좋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워하기도하고 안타까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지 않아 몇 사람의 기억에만 남게 될겁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남아 아름답게 기억되다가도 그 사람 역시 사라지고 나면 그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도 조금씩 사라지고 맙니다. 그것은 육체의 아름다움보다는 더 오래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선교사였던 짐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이 세상의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붙잡고 그곳에 목적을 두고 살지 않고 영원한 생명과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그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의 기억속에 남아 있지만 영원히 하나님의 품에 남아 기쁨으로 있을 것입니다.

 

한번 나를 향해 물어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또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어디에 시간을 쓰며 살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사람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스스로에게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