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선생님의 글 중에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는 이렇게 의미 깊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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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 글을 읽으면서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마 예수님이 나에게 그런 분이시지 하는 위로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 다른 친구보다 더 진실하신 친구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넉넉히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나는 그런 사람인가를 생각해봅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맘을 맡길만한 사람이고 사랑하는 이들을 맡길만한 사람인지 되물어봅니다.
가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가보면 내가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아이들이지만 그 속에 있는 아픔이나 상처조차 다 알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좋은 아빠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 아이들의 마음을 몰라주거나 그 마음을 받아 주지도 못한 사람이었던 것을 발견합니다.
밖에서야 교회 목사로 성도들을 돌아보고 위해서 기도한다고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나 집에서 내 역할은 다 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목사로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을 자신은 없지만 말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 사랑하는 자녀들과 아내에게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전혀 그렇게 믿을만하고 의지 할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교회를 향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동행하신다고 선언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여전히 죄악 가운데 헤메고 있을 때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며 나의 연약한 부분을 함께 감싸 안으시는 그분을 봅니다.
여전히 불완전하고 연약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와 동행하시마고 약속하시고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키시는 예수님이 있으시기에 그런 예수님의 의지하고 나도 그런 사람을 가졌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을 가졌느냐는 함석헌 선생님의 질문도 역시 그와 같은 대답을 알고 계시기에 하신지도 모릅니다. 내 사귀는 사람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것입니다. 그러나 혹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좋은 친구이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나는 가졌노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뿐 아니라 귀한 성도들을 보면서 작은 다짐을 해 봅니다. 언제 무너질 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그들에게 그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써 보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애씀으로 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포기 할 일도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 강청해서라도 은혜를 구하면서 내가 좋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나는 그런 사람을 가졌노라고 말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