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마리아인’ 실험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한 실험입니다. 그는 한 대학에 있는 신학과 학생들에게 강연을 부탁했습니다. 그중 한 부류에겐 자유로운 주제로, 또 다른 부류엔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을 부탁했습니다.
그러고는 시간차를 두고 한 명씩 강의를 할 다른 건물로 이동시켰습니다. 강연 주제와 관꼐없이 그중 누군가에겐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갈 것을 요구하고 또 어떤 이에겐 여유 있게 가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길에 아파 보이는 사람을 누워있게 했습니다.
과연 누가 이 사람을 도와주었을까요?
짐작하자면, 착한 사마리아인 강연을 준비하는 신학생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들 신학생들 가운데 ‘착한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보인 학생들은 자기가 준비한 강연 주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강의실로 가던 신학생들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즉 (강연 주제와 상관없이) 강연 시간이 급하다고 전해들은 신학생들 가운데선 오직 10%만이 병자를 도왔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신학생들 가운데선 60% 넘게 병자를 도왔습니다.
누군가는 이 실험 결과 때문에 낙심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선행을 베푸는 이유가 고작 신간적 여유 때문에 좌우 된다는 사실이 믿고 싶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 대상이 신학생들이었고 그들이 준비한 설교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설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참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알고 있는 지식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성경을 알고 그 말씀을 듣지만 나의 삶에서 그 삶을 살아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일상 속에서 우리는 너무 분주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주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갈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조금은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삶을 생각해봅니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애쓰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 말입니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내가 사는 방식에 고민을하고 천천히 살아가다보면 조금은 더 내 신앙과 믿음을 삶에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내가 믿는 믿음을 삶 속에서 훈련하는 것일겁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선하게 사는 것이나 다른 이들에게 착한 존재로 대하는 것이도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부단히 훈련하고 나의 약점을 이기기 위해 애써야합니다. 또 다른 이들을 향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바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훈련없이 노력없이 우리가 변화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훈련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가진 그대로의 모습을 고집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내 속에서 변화할 것들을 찾아보고 기도하며 애써 갈 때에 우리는 조금씩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기 위해 조금은 여유롭게, 느리게 걷기를 바라고 또 그 삶을 위해 기도하고 훈련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