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책이 있습니다. 에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장 지오노”라고 하는 작가가 지은 책입니다. 그 내용은 세계1차대전을 전후하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지역을 배경으로 합니다.
여기 홀로 된 남자가 있다.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었다. 엘제아르 부피에. 프로방스의 목자이다. 그는 52살 되던 해에 황무지에 나무를 심기로 결심한다. 하루도 쉬지 않고 도토리를 심었다. 3년이 채 안되어 10만 개를 심어 그 가운데 2만 개가 싹을 틔웠고, 1만 개는 우람한 떡갈나무로 성장했다. 엘제아르는 계속해서 너도밤나무, 단풍나무, 자작나무를 심었다. 나무는 숲이 도었다. 황무지에 사람들이 돌아오고 지상의 낙원이 완성되었다. 물론 그 낙원은 고결한 희생과 헌신이 낳은 숭고한 땅이다.
부활절이 봄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마음으로 나무에서 새싹이 돋기를 기대하고 겨우내 찬바람에 숨어있던 씨앗에서 새순으로 돋아나는 생명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이처럼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소망이 되었습니다. 기꺼이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죽음을 향해 걸어가신 그 길의 끝이 다시 새명으로 이어지고 잇다는 것은 참으로 이 땅에서 여전히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소망을 주는 일입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장지아노가 지은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오는 엘제아르 부피에는 참으로 내 마음속에 숭고하게 남아 있습니다. 에니메이션으로 만든 영상속에서 그의 모습은 세상을 등진 촌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이 세상이 세계대전으로 시끄러울 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속에서 자기의 땅도 아닌 그곳을 위해 나무를 심고 있었습니다.그는 자기의 심은 나무 씨앗들이 잘 발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합니다. 그리곤 긴 기다림의 시간을 또 다른 나무를 심는 것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의 기다림은 어쩌면 참으로 멀고도 소망 없는 것 같아보이지만 결국 그는 다른 이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 산이 살아남으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살아나고 회복되는 것 까지를 보게됩니다. 물론 그가 그것을 기대한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에서 예수님의 부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와 비슷한 일일지 모릅니다.
세상은 여전히 소용돌이치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싸우며 살아갑니다. 전쟁과도 같은 삶의 연속인 세상에서 우리는 어쩌면 그들과는 전혀 다른 소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 땅 가운데 허락하신 부활의 소망을 품고 우리가 그 하나님의 첫 창조하신 사람의 모습을 회복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오늘도 묵묵히 부활의 씨앗을 심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모습이지 않을까요?
부활의 씨앗은 어쩌면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지금 우리에게 심기어져서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아직은 씨앗이어서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기는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기는 그 능력과 은혜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만한 것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은 그 부활의 소망을 심으시고 자라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우리를 성장 시키고 성숙 시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서도 확장 시키기를 원하십니다. 나만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피에가 그러했던 것 처럼 그 소망을 심으므로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녀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에게와 친지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망을 잔잔히 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루 아침에 모두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광장한 것을 이야기 하기보다 일상에서 묵묵히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그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그들 속에서 그 소망의 씨앗이 심겨지고 시간이 흐른 후에 그 씨앗이 발아해서 나무로 자라는 것을 꿈꾸어 봅니다.
분명히 겨울이 지나고 나면 봄이 오는 것이고 씨앗이 심기면 싹이 나고 나무로 자라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