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6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milky-way-4006343_960_720.jpg

 


매주마다 주보에 글을 쓰면서 거의 매번 한숨을 쉽니다. 어쩌자고 어리석은 일을 시작해서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후회와 함께 말입니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꼭 글을 통해 해야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이렇게 매주마다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것이 자주 부끄럽습니다.

 

처음에는 설교가 아닌 일상의 말로 편안하고 사는 이야기를 건네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주 작은 위로나 권면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문제는 그럴만한 재주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또 주보에 글을 싣는 목사님들이 있지만 그분들은 저에게는 없는 남다는 재주가 있는 모양입니다. 

 

하는수 없이 좋은 글을 쓰는 분들을 찾아보기도하고 책들을 뒤적거리기도합니다. 그러다가도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때는 마치 깜깜한 어둠 속에 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도통 보이질 않아서 무어라도 작은 불빛을 찾게 됩니다. 나를 비춰줄 아니 내가 쓸 글감을 찾도록 해줄 누군가의 반짝이는 말이나 글을 만나면 그것이 제게는 참 큰 선물이 됩니다.

 

어둠이 짙게 내린 밤이면 보통은 집 안에서 잠을 청하기 마련이지만 때론 그 어둠 속에 서기도 합니다. 요즘이야 그런 짙은 어둠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캐나다의 삶은 간혹 그런 칠흙과 같은 어둠 속에 서는 경험을 하게 하기도 합니다.

 

문득 달빛도 없는 칠흙과 같은 어둠 속에서 혼자 있을 때를 생각합니다. 처음은 두려움이지만 이내 그 고요함과 적막함의 평안과 위로를 느낍니다. 그리고 이내 그런 평안과 위로는 어둠이 아니라 그 어둠 안에서도 작게나마 만나는 별빛이나 달빛이 주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어둠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낮은 사람들이 깨어 다니도록 하시고 밤은 짐승들이 활동하며 먹이를 찾도록 하셨기 때문이라고 시편 기자는 노래합니다.

 

어둠이 나를 안심시키지 못할 때에 하늘에서 작게나마 땅을 비추는 달빛은 위로가되고 선 곳과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대낮에는 하늘에 떠 있어도 태양의 빛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고 그 존재도 알 수 없지만 어두운 밤이 되면 그 태양빛을 반사시켜 내면서 우리가 사는 땅을 조금이나마 비춰줍니다.

 

충분한 빛은 아니지만 그 존재만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배려이자 은혜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칠흙과 같은 어둠이 있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를 비추는 빛은 여전히 있음을 알려주시고 그로 인해 위로를 얻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 말입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분주히 살아가는 삶의 시간들도 자주 잊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 그리고 나의 오랜 친구들 말입니다. 

 

너무 분주하게 살아가느라 그런 소중한 이들도 잘 생각해 보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어느순간 우리가 어둠에 서게 될 때 그들에게서 비춰지는 작은 불빛은 우리에게 한없는 위로와 평안을 선사합니다. 늘 그자리에 있었고 늘 비슷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알지 못하던 그들의 사랑과 위로입니다. 그러나 문득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있어줌으로 인해서 기쁨이 되는 그들을 만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둠이 짙은 저녁 시간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동일한 사랑과 은혜를 부으십니다.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도 우리가 힘겨워 울 때에 혹은 어려움에 탄식할 때에 그분이 보내신 사랑하는 이들의 중보 기도와 위로들을 통해 갑자기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 사랑을 오늘도 기억하면서 기쁘고 감사한 시간들을 살아가길를 바랍니다.


  1. 광야에서 만나는 기쁨

    한동안 “광야를 지나며”라는 찬양을 듣고 불렀던 적이 있습니다. 히즈윌이란 팀이 부른 찬양입니다. 여러 사람이 찬양을 불렀고 또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미국 청년이지만 한국에 와서 공부하면서 길거리에서 찬양 사역...
    Date2019.07.17
    Read More
  2. “어둠 속에서 찾은 위로”

    매주마다 주보에 글을 쓰면서 거의 매번 한숨을 쉽니다. 어쩌자고 어리석은 일을 시작해서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후회와 함께 말입니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꼭 글을 통해 해야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이렇게 매주마다 무엇인...
    Date2019.07.09
    Read More
  3. 풀도 아프다

    어떤 시인은 풀에서 향기가 난다고 했습니다. 풀이 베어진 자리에서는 향기가 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향기에 취해 아픈것도 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너무도 잘 자라는 잔디를 깎다가보면 그 풀이 베어진 자리에서 나는 것이 향기로 느껴지지...
    Date2019.06.26
    Read More
  4. 사랑과 기다림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어머니의 태속에서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날을 기다리고 아이일때는 어른이 될 날을 기다립니다. 학교에서 방학을 기다리기도하고 졸업...
    Date2019.06.18
    Read More
  5. 나는 어디에 서있나?

    가정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이곳 캐나다에서 살아가는 상황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성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지으신 아버지나 어머니의 책임(?)이 우리들의 삶에서 좋은 쪽으로든 나쁜(?)쪽으로든 드러나는 것을 봅니다. ...
    Date2019.06.12
    Read More
  6. 나무처럼

    누가 그런 글을 썼더군요. 예수님의 삶은 마치 나무와 같다고 썼습니다. 아니 나무를 닮았기도 하지만 늘 나무와 관계가 있었고 그 나무를 통해 예수님의 성품을 보여주시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실 때부터 낮고 천한 곳인 말구유에 누이셨고 이 땅...
    Date2019.06.04
    Read More
  7. 느리게 생각하기

    매주 칼럼을 쓰기 위해서 애를 써보지만 가진 재능에 한계가 있어서 항상 힘이듭니다. 그래도 부족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조금이나마 설교가 아닌 글을 통해서 생각을 나누고 대로는 위로를 혹은 격려나 도전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글들을 잘 쓰는 ...
    Date2019.05.29
    Read More
  8. 길 위에서

    카를로스 카스타네다는 <돈 후앙의 가르침>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여행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길뿐, 즉 마음이 담겨 있는 길이다. 어떤 길이든 마음이 담겨있는 길로 나는 여행을 한다. 여행하면서 그 길을 끝까지 다 걸어 보는 것! 그것만...
    Date2019.05.21
    Read More
  9. 어버이주일을 지나며

    어버이주일을 준비하다가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오래전에 미국에서 방영한 ‘판사’(The Judge)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기고한 글입니다. 이 드라마는 로버트 프랭클린이라는 나이 지긋한 가정법원 판사가 주재했던 실제의 판례를 드라마화한 것...
    Date2019.05.15
    Read More
  10.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2014년 8월, 진화생물학자이자 유명한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에게 한 여성이 가상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물었습니다. “제가 정말로 다운증후군 아이를 임신한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정말 윤리적 딜레마가 아닐 수 없군요.” 도킨스는 몇 초 ...
    Date2019.05.0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58 Next
/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