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집(마가복음 11:20~25)

2021.09.09 11:53

lfkpc 조회 수:1

11: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11: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11: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20~25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으시고 상을 엎으신 예수님은 이 성전이 강도의 집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이라는 하는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이제 이 땅에 공간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장소에서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삶으로 성전을 찾고 제사하는 행위로만은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며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성전이 무너져야 하나님을 찾게 되는 아이러니에 놓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뒤로하고 다시 베다니로 나오셨다가 다음날 길을 가십니다. 제자들은 길에서 하루전에 저주 받았던 무화과 나무가 마른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이 사실을 예수님께 말하고 예수님은 이 일을 설명하시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울 수 있는 믿음이라고 말하시는 것을 덧붙이십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이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자 기도하며 가져야 하는 믿음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마르게 하신 것은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가르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사건을 기도와 믿음의 눈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보인 것처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믿음없는 유대인들을 상징합니다. 겉으로는 무성한 잎을 가진 것처럼 그들은 성전에서 제사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에 출입은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저기의 이익에 관심이 있고 자기들의 지위와 권력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후에 나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당국자들은 모두 그 앞장선 사람들입니다. 성전을 통해 이익을 얻고 다른 이들 앞에서 높임을 받기는 하지만 정작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로 대표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나아가서 성전은 이제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지위를 잃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 성전 휘장을 찢으심으로 공간으로 성전이 존재하지 않고 예수님의 피로 구원 얻은 사람들,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을 성전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으며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성전으로 교회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나의 소원을 하나님께 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실것이라 믿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어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용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나의 허물을 회개함으로 기도의 자리에 설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사하여 주실 것이라고 덧붙이십니다. 기도하는 이들은 먼저 내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초하여 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서는 이들이 다른 이를 미워하고 용서 할 수 없거나 그들에게 범죄함으로 허물을 가진 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먼저 회개로 시작하거니와 아울러 우리가 그들을 용납하고 사랑하므로 기도의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기도는 우리의 소원으로 하나님을 끌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로 맞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진리이신 하나님께 내 뜻을 묶어 끌어 당기면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께로 끌려 가는 것입니다. 배에서 줄을 내려 정박할 부두에 묶고 줄을 당기면 배가 땅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줄을 묶고 기도의 끈을 당기면 우리의 생각과 뜻이 하나님께로 끌려 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를 소원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기를 애쓰는 이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산을 옮길만한 기도는 능력과 관계되기 전에 산을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 나아가는 우리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그 앞으로 나아갈 때 그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나를 맞추어 갈 때 산을 움직이고 바다를 흔드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