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가는 길(누가복음 23:26~38)

2021.03.23 11:49

lfkpc 조회 수:47

23: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23: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3: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23: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23: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23: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23: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23: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23: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으신 후에 군병들에 의해 끌려 십자가를 지시고 성문 밖에 있는 골고다로 가십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과 저주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해골이라 불리는 곳인 골고다(갈보리는 골고다의 라틴어 번역)로 가십니다. 저주를 지시고 죽음을 향하시는 것은 우리의 죄가 이를 결국을 보이시는 것이자 그 죽음을 우리에게서 거두어 주시는 은혜의 걸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을 위해 가시지만 그 길은 모든 사람의 악의와 조롱, 저주와 거절이 모인 자리입니다. 이토록 빠르고 급하게 모든 사람이 마음을 보아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의 대속은 그들의 악함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들의 죄를 심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저주로 죽을 이들의 죄를 심판하시고 또 그들을 위해 대속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시는 길은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구레네 사람 시몬으로 조금의 위로를 얻습니다. 모두가 거절한 예수님의 길이지만 그 길을 억지로라도 동행하게 되는 한 사람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를 지고 걸을 제자들과 교회를 향한 본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억지로 지고 가는 것같을 십자가이지만 감사함으로 그 사역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어려고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부르심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로 그의 청지기로 세움을 입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점점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대다수는 구경하는 이들이었겠지만 그 중에서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아파하고 애통하는 여인들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유독 누가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여인들의 모습을 들려주면서 어머니의 마음과 여인들의 순전한 섬김을 들려줍니다. 지금도 교회는 많은 여성들의 섬김과 헌신에 힘을 얻습니다. 순전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이들에게 성별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만은 그래도 그 헌신을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으십니다.

다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위하여서가 아니라 예루살렘과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심으로 당신의 걸으시는 십자가의 길과 죽으심이 억지로 억울하게 가시는 걸음이 아니라 당신이 허락하시고 걸으시기를 자청하신 대속의 길이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동정할 것도 아니며 보고 슬퍼할 것도 아니라 그 구원을 감격하며 기뻐하되 그 위에 달린 나의 죄를 통회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이 십자가에서 희석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그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은 말씀하신 심판의 날을 예비하는 것임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의 날은 곧 임할 것입니다. 심판을 피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며 슬퍼할 것은 그 죄의 원인이자 이유인 나를 슬퍼하며 애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켜 죄사함을 받기를 간구합니다. 

그 십자가 바라보는 시간에 나를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