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 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 31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 32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사람들이 보기에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참 많이 달랐습니다. 세례요한은 심판을 선포했고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 어울리셨고 약한이들을 고치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모두를 거부하며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회개를 선포하는 요한은 미워했습니다. 그의 지적이 옳다하더라도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요한을 싫어 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을 환영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죄인인 이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자 이것도 싫어 합니다.

 

인간은 내가 받는 용서는 감사하지만 다른 이들이(내 생각에는 죄인인) 받는 용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의 죄르 ㄹ지적하기는 쉽지만 나의 죄를 회개하는데 나아가는 것은 힘들어합니다. 이것이 죄인된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누가보기에도 죄인인 우리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구원을 선포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그런 의미에서 주의깊게 살펴볼만 합니다. 예수님이 고치시고 먹이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함게 어울리던 이들은 당대에 죄인들이었습니다. 억울할 것 없는 죄인들이었고 그들과 예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결코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아서가 아닙니다. 죄인이기에 그들을 사랑하신다면 다른 모든 이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선포하시고 드러내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요한의 선포에 아파하며 회개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가가멊이 받으며 그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도 부으신다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부어지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