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4장에는 삼손의 이야기가 본격젹으로 시작된다.

특별히 성인이 된 삼손이 나실인으로서의 규례를 온전히 지키지 않고

심지어 이방인인 블레셋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라면 하나님이 율법이 엄히 금한 이방인들과의 통혼은 금해야 할것인데 심지어 더욱 정결의 예법을 지켜야할 나실인인 삼손이 전혀 개의치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는 아내갈 될 여인에게 오가는 길에서 사자를 만나 하나님의 임하신 능력으로 죽이고 그 손으로 후에 죽은 사자에게서 꿀을 취하여 먹기까지 한다.

사자를 죽인 것이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으니 감사한 일이겠으나

그의 나실인의 규정이라면 죽은 동물의 시체를 만지는 것이 금해진 일이었을터인데 그는 개의치 않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나실인으로 자라지만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 외에 그의 나실인으로서의 정결예법에느 ㄴ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고 계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그러한 행동이 블레셋과의 균열을 일으키고 이로 인하여 블레셋을 징계하시는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쓰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가 결코 신실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삼손의 이야기는 그대로 이스라엘의 투영이기도 하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그 존재를 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거룩한 백성의 자리에 있어야 하지만 그들은 이를 망각하고 이방인들과 동일하게 살며 그들의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 앉는다. 심지어 지금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통치를 받고 있는 현실에 수긍하고 그 안에 안주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부르짖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삼손을 통해 하나님을 떠나간 이스라엘을 보여주시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다가 오래참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또한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랴참으심 안에서 있던 그들이 끝까지 평안 할수 있을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사들을 보내시고 그들을 회복시키시지만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지 않던가?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로 인하여 값없이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기하셨다고 말할 수 없고 여전히 그들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헤를 우리는 발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왕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삶이 그들 안에 꼐속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삼손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그를 사사로 쓰셨다. 그러나 그는 결국 브레셋의 손에 노예로 잡히고 놀이개감으로 놀림을 받는 자리에 설 뿐이다.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의 회개를 들으심으로 그의 마지막은 위대한 사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지만 그 이전에 그는 그저 자기에게 맡겨진 소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삼손을 쓰셔서라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사사로서의 역할을 하게 하신다.

 

오늘 나는 하나남의 부르신 삶을 살고 있는가?

그의 거룩한 백성 그의 소명을 따라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삶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오래참으심으로 오늘의 나를 그래도 용서하시고 계시지만 

그 하나님이 어리석은 나를 통해서도 교회로 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시지만

언제 나의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런지 알지 못한다.

깰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