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비와 헌신(마가복음 14:3~9)

2021.09.22 20:23

lfkpc 조회 수:45

14: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14: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14: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4: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4: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4:3~9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의 행적중에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여인의 헌신을 두고 사람들과 제자들은 귀한 것을 허비하는 것이라 힐난했지만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헌신이라 말씀하시고 이 행위를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가지는 자기기만과 비판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대속의 죽으심을 죽기위해 길을 가시지만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알지 못할 때에 한 여인의 헌신이 죽으심의 의미와 고통을 함께 예비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마리아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헌신은 앞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계략과 뒤이어 나오는 가룟유다의 배신 사이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비하고 있는 이야기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지만 또 어떤 이는 예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의 고백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이와 같은 일은 반복됩니다. 여러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에서도 헌신과 실패는 반복되기도 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내가 선 자리를 주의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인의 헌신은 아마도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발로였을 것입니다. 자기의 집에 오신 예수님을 최선을 다해 섬기기 위해 보통이라면 귀한 향유 한두어 방울을 떨어뜨렸을 것이지만 그 전부를 깨어 부어드림으로 감당할 수 없는 섬김의 고백을 드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여인의 헌신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모습과 반응입니다.

제자들은 이 섬김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그의 허비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향유를 붓는 행위가 너무 과하게 여겨지기도 했을 것이고 이 값비싼 것을 더 좋은 일에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여인의 헌신을 오히려 책망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본문의 책망은 꽤나 엄하고 무서운 투로 하는 것이어서 여인을 향한 분노까지 느껴지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여인을 칭찬하십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는 마당에 여인의 섬김이 의도했든지 아니든지간에 예수님의 죽으심을 미리 예비하는 행위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불과 얼마남지 않은 동행의 시간을 마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그들을 떠나실 것입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할 수 있는 구제를 하지는 않으면서 물질을 가지고 인색하게 핑계를 대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아는 것은 그 물질을 사용하는 일에도 지혜를 주는 것입니다. 여인의 헌신은 지혜로운 헌신이자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비하는 위로와 동행이 되었습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던 아브라함 처럼 우리도 우리의 가진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고 이웃을 도우며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기를 원합니다.